2019년 5월 한국, 서울에서...
네. 이렇게 조금 정리해 볼 수 있다는 건? 이미 '캐나다로 돌아왔구나!' 이 뜻이겠지요. 빙고! 맞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리고 무난하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 시간으로 2019년 5월 28일 집으로, 에드먼튼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한국방문은 총 32일 간의 긴(?) 일정이었답니다. 맞습니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에 머물어 보는 건.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죠. 일정부분, '한국에 왔어요!' 그리고 조금 후. 바로 '갑니다!' 하지 않을 수 있었던 느긋하게(?) 한국에 머물 수 있어서 매우 감사했습니다. 물론, 더욱 감사했던 건. 제가 이곳 캐나다에서의 일상이나 비즈니스(!!)를 놓고, 한 달 이라는 시간을 빼서 한국으로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조력과 역시 감사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 맞습니다. 네. 가족들 모두 수고 많으셨고, 무척 감사했습니다.
시차의 마법
에드먼튼 교포 분들은 이미 잘 아는 사실이지만, 저는 한국시간으로 5월 28일 오후에 벤쿠버행 비행기를 탔었답니다. 그런데 캐나다 시간으로 5월 28일 오후에 도착했었죠. 이상하지요. 네. 캐나다에서 한국을 향해가면, 도착일은 하루가 더해진 다음 날 오후에 한국에 도착합니다. 다시 한국에서 캐나다로 향해오면, 출발한 한국날짜의 오후시간에 이곳 캐나다에 도착합니다. 다시 벤쿠버 국제공항에서 에드먼튼행 비행기를 타고 오면, 실질 비행시간 보다 다시 한 시간 더 더해진 시간이 바로 에드먼튼 현지 시각입니다. 이 작은 부분은 간혹 많은 분들의 착각을 만들기도 한답니다. 시차의 마법이죠.
작은 에피소드다 한다면...
저는 주로 에어캐나다를 이용합니다. 아하! 이유는 타 항공보다 조금 저렴합니다. 맞습니다. 물론, 이번 비행은 약간의 좋은 거래가 있었답니다. 제게 에어캐나다에서 제공한 25% 비행 활인쿠폰이 있었죠. (아니, 세상이 이런 일이!) 그래서 사실 조금 더 부담이 적은 금액으로 한국여행 및 방문을 계획할 수 있었답니다. 한국으로 갈때는 옆 자석의 한국계 교포분들과 즐겁게 수다를 나누며, 다양한 캐나다지역의 정보도 나눌 수 있었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때는 옆의 분들은 모두 다 남자분들이었던지라! 덕분으로 조용하게 몇 편의 영화도 보고, 생각도 정리하고, 푹 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참고로, 이코너미석을 '비즈니스석 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팁이다) 한다면, 좌석 교환. 혹은 좌석구매 입니다. 단거리 비행구간인 에드먼튼에서 벤쿠버 구간은 좌석을 바꾸지 않았고, 장거리구간인 벤쿠버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왕복으로 한 좌석당 150불씩. 도합 300불 정도 더 내고, 발을 충분하게 뻣을 수 있는 좌석으로 예매했었답니다. 네, 실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본인도 사용하지 않는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시오!' 하며 호기롭게(?) 강권하던(?) 남편에게 '일단, 마음만 받겠습니다. 고마우이!' 했고, '엄마, 이코노미석도 좋아요!' 하는 자녀의 권유에 따라 '이코노미로 하자!' 했습니다. 다만, 남편은 그러면 의견을 종합해 최소한 발은 편안하게 뻗을 수 있는 좌석'으로 하자 하더군요. 감사하지요. 네. 처음부터 명확하게 '비지니스가 목적이다' 하고 출발을 했더라면, 혹여(?) 과감하게(?) 비즈니스석으로 예매했을 듯 싶습니다만, 애초 방문목적은 일단 매우 단순했던 가족방문이었던 지라 '이코노믹'으로 했었고, 그러나 한국도착 후. 불가분 '비느니스 만남'도 있었으니. 이래저래 두루목적이었다 하겠습니다. 네, 한 달 이상의 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은 아니니까요. 작은 에피소드다 한다면, 앞 좌석이 있으면, 앞 좌석의 의자 밑에 넣어두어야 할 노트북 입니다만, 앞 좌석이 없는 관계로, 전 제 발 밑에 가지고 탔었어요.그런데 이륙을 하려니 천정 천장에 노트북을 넣어달라는 스트디어스의 요구에 의해 건너편 천정 선반에 제 노트북 가방을 친절하게 넣어주던 유머스러운 백인 아저씨 왈, '그래, 우리가 비즈니스 석이야!'하십니다. 웃고 말았죠. 과거 -어느 시절 과거인지?- 사실상 이 좌석은 추가요금을 받지 않았고, '비상시에 승무원을 도와주시겠습니까?''하는 질문을 하고, '그렇다'하면, 같은 가격으로(?) 발권해 주던 좌석이 맞습니다만! 시절은 변했고, 추가요금을 받습니다.
한국은 왜 덥니!
네, 추운 혹은 쌀쌀한 캐나다에서 한국에 가니. 더 덥게 느껴졌겠지요. 한국의 기후는 제가 이주 해 올 당시의 그 시절은 아닙니다. 더 더워졌다 해야할지. 더욱이 공기 때문인지. 먼지 때문인지 목이 아파서 -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 조금 죄송한 말씀이겠습니다만! - 다니는데 항상 목이 가라앉는다. 혹은 목에 뭐가 낀듯한 느낌이 들어서 목소리도 갈라지고, 약간 불편했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캐나다에 돌아오니 '여긴 그래도 공기는 맑지!' 했었답니다. 허나 바로 수 일 뒤 '레스브릿지'에서 큰 화재가 나서 그 화재의 매캐한 바람이 불어와서 '공기질 최악'이다 하는 경보가 최근 이곳 에드먼튼에 있었답니다. 이곳은 건조지역이라서 화재가 대형화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먹으로 간 건 아니지만!
사진 설명을 해 볼까요. 네, 반가운 만남은 항상 맛있는 먹거리와 함께하기 나름입니다. 그 중에서도 첫 손으로 꼽자면, 바로 '집에서 만든 우리 엄마표 만두' 되겠습니다. 저는 삼형제인데, 현재 저와 막내는 한국 밖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침, 제가 한국 방문을 하던 중인 5월 중하순에 막내도 한국에 휴가를 받아서 들어왔었고, 그래서 만날 수 있었지요. 한국도착 전에도 '엄마! 만두!' 합니다. 실은 저도 도착 후에 '만두!' 했었고요. 서울에 있는 첫째 동생도 '만두 만들었다!' 하는 말에 한 걸음으로 퇴근 후. 바로 달려옵니다. 현관문 들어서자 마자 역시 첫 마디는 '만두!' 였답니다. 네, 엄마표 만두가 어디 사먹는 만두에 비하겠나요. 물론 저도 '만두 만들어요. 캐나다에도 가지고 가게!' 했었답니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장모님 만두!' 를 찾는 1인도 있으니까요. 만두를 먹이고, 먹겠다 하는 일념 하나로, 만두를 만들고, 찌고, 다시 꽁꽁 얼려서 진공포장을 후. 캐나다로 공수도 해 왔답니다.
오른쪽 상단 사진은 심림역 근처에 있는 '엉터리...' 라는 식당에서 고기를 굽기전 세팅사진입니다. 네. 실은 한국방문 전 남편과 지인분의 조언으로 '종합건강검진'을 하고 왔답니다. 선택과목으로 '수면 위&대장내시경 검사'를 신청한지라. 검진 전 날부터 금식. 검진 후. 집 앞에 와서 '과한(?) 식사'를 했었지요. 건강검진도, 저는 '신청'하면 바로 아무 병원에서 내가 원하는 날짜에 할 수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답니다. 물론, 아니더군요. 볼일 보고, 느긋하게(?) 시차적응 하고, 주 서식지 앞 대형종합병원을 느긋하게 찾아갔더니만, 약 2달 후에나 '가능'하다 하고, 기타 다른 병원들도 유사했으니. 그래서 할 수 없지 했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검색을 하다보니. 마침 5월 한 달 동안 50% 프로모션을 진행하던 병원 몇 군데가 나왔고, 덕분으로 5월 중순에 건강검진을 잘 받을 수 있었답니다. 나름 의료의 신문명, 신세계를 경험했답니다. 경험해 본 캐나다의료와 한국의 의료는 나중에 비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른쪽 중간 부위의 사진은 탕수육 되겠습니다. 네, 사실 캐나다에 있는 제 식구들에게 일상적으로, 매우 흔하게 만들어 주는 메뉴인데, 생각해 보니. 그간 저희 부모님에게는 만들어드린 적이 없더군요. 바로 실행모드. 눈 감고도 만드는 게 탕수육 아니겠어요. 네, 한 접시 뚝딱 바로 사라집니다. 튀김은 참 맛있죠. 덕분으로 그 다음 날에는 '기름'이 아까워서 냉장고를 털어서 다양한 야채튀김도 준비해 봤었답니다.
왼쪽 하단부는 '종로에서 만나자!' 하고 만난 친구와 인사동으로 행선지를 바꿔서 '밥먹으로 가자!'하고 돌아다니다 '곤드레밥' 정식을 먹어봤습니다. 이 친구와 인사동을 함께 걸어다니다. 친구가 친구의 어머니용으로 편안한 여름 바지를 상점에서 고르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엄마랑 한 번도 쇼핑을 함께 나와본 적이 없네! "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다음에 꼭 함께 나와! "
열무김치로 냉면만들기!
네, 하단부 중간 사진은 '냉면' 입니다. 열무김치를 담그고, 바로 냉면을 만들어 먹어주는 센스. "맛있다. 맛있다!" 냉면파인 저희 아버지가 감탄을 하시더군요. 네, 저도 냉면파라서! 냉면은 여름에 진리 아니겠어요. 비빔냉면부터 시작해서 물냉면에 이르기까지. 네, 한국 참 좋죠. 마트에 냉면을 집에서 잘 해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약간 거기에 더해 열무김치나 달걀 혹은 육류를 준비해서 함께 곁들여 먹어줘야죠.
왼쪽 하단부 사진은 인사동 전통찻집에서 먹어본 빙수입니다. 이 찻집은 중간마당 중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답니다. 캐나다에도 이런 전통가옥을 하는 생각 잠시 해봤습니다. 빙수는 대추를 얇게 잘라서 건조를 시킨 후에 고명으로 사용한 게 매우 인상적이었답니다.
캐나다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시 멈추면, 그제야 조금 더 잘 보이는 것들...
장시간의 비행시간동안 한 좌석에 앉아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을때, 여러 생각들이 더해집니다.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하나씩 생각대로 정리도 하고, 분석도 하고, 그리고 다시 저장하는 시간을 갖기 나름입니다. 그 안에만 있으면, 마냥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할 듯 싶기도 하는지라. 듣고, 보지만 '지나는 일'로 놓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놓칠 순 없겠죠. 잠시 움직임을 멈추면, 조금 더 잘 보이고, 더 읽혀지는 게 있습니다. 다 상대적인 것 아니겠나요. 항상 하기에 익숙해지고, 익숙해 지니. 유지본능 및 관성 및 타성에 젖어서 크게 '바꾸지 않고, 진행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 일이 이성적, 합리적 혹은 상식에 맞는지. 경우에 맞는지. 이치에 맞는지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다시 시스템을 조정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요. 네. 감사하게도 제가 가족과 관련해 몇 가지 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조정하고자 했던 일들이 있었는데, 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조정이 되고 있답니다. 저희 부모님 그 중에서도 어머니는 참을성이나 인내심이 무척 많으십니다. 그 공과 덕은 물론 어느 곳에 가지 않습니다만, 때론 참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닌지라, 빠르게 결단할 건 결단해야 합니다. 모든 걸 다 무한 이해와 무한 인내로 끌고갈 순 없지요. 저는 지난 약 15년 이상 이곳 캐나다에 살다보니, 안부를 전하면, 마냥 항상 제 어머니는 '좋다. 괜찮다' 하시기만 하셨어요. 어지간한 일은 전하지도 않으시죠. 그래서 역으로 제 어머니 입에서 '이렇더라'하는 말 한 마디가 나왔다 하는 건. 이제 결단하고, 행동할 때를 의미합니다.
캐나다의 대학생들은 ?
긴 여름방학 중.
네. 매년 5월부터 8월까지의 시간은 대학생들의 긴 여름방학입니다. 오해는 마시라, 물론 초, 중, 고등생은 매년 9월 부터 6월 말 까지 학기는 진행됩니다. 또 대학생이다 할지라도, 매년 5월부터 8월까지 모두 다 '휴식모드'인 건 아니죠. 각 학생들 마다 다른 여름방학을 진행하기 나름입니다. 어느 학생들은 '온라인 학습'도 하고, 직접적으로 매 주 평일 모두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계절학기도 수강'도 하기도 하고, 다음 학기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하기도 하며, 때론 여행도 갑니다. 네. 저희 자녀도 이미 이번 년도의 7월 8월에 진행할 계절학기를 신청해 둔 상태. 5월과 6월은 쉬려고, 비웠다 하는데요. 그래서 제게 자녀가 '엄마, 내가 있으니까 한국에 다녀오세요!' 하고 권유했던 이유랍니다. 아하! 맞습니다. 제 자녀는 저의 뜬금없었던 '한국여행' 및 '한국방문'의 숨은 조력자이자, 캐나다에서 진행해야 했던 일을 거의 도맡아 준 '노동자'. 근로자 였습니다. '가족끼리 다 하는 구만!' 싶지요. 빙고! 맞습니다. 어떤 비즈니스라 할지라도, 이곳 캐나다에서는(?) 가족의 조력이 필수죠. 그 이유 중에는 바로 기본 인금. 인건비가 매우 높으니까요. 물론, 자녀는 5월과 6월을 학습은 잠시 놓고, 노동만 하자 하니 시간이 아깝다 하더군요. 그래서 다니는 uofA 대학에서 '온라인 학습'을 신청해서 수강하고 있고,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고 있답니다. 보너스로, 저희 일상가사 및 비즈니스도 약 한 달 이상 도맡아 준 것이죠. 본인이 '맡겠다' 하던 일상가사 및 학생관리도 매우 최선을 다 했을 줄 압니다. 실전은 곧 학습. 아무래도 보조 만 받다 집 안을 살피고, 여러 식구들을 살피고, 그들의 '입'과 '위장'을 책임져야 하며 살림도 맡아봤으니 어깨너머로 보고, 거들던 상태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홀로 책임지면서 알게되고, 느끼게 된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 같지요. 삶의 현장학습 아니겠어요. 언젠가 자녀가 이렇게 항변을 하더군요.
" 엄마, 내가 살림하는 걸 잘 모르는 건.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아서에요. 나에게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네.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학습기가 되면, 부모는 대부분 자녀에게 '일상의 일'에 관심을 두기 보다 '학습'에 보다 더 충실할 것을 권하기 나름이지요. 그러다 보니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학업을 매우 충실하게 잘 할 줄 알면, 큰 착각에 쉽게 빠집니다. 학습을 잘 할 수 있으니 그 보다 더 상대적으로 쉬운 '일상가사'는 이미 다 잘 알겠지 하거나 항상 '올바른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것이다 하는 매우 편의적 착각을 하지요. 어느 순간. 어린 자녀가 생각보다 '잘 모른다' 하는 걸 아는 순간이 있기 나름이고, 또 그제서야 역시 '이 모든 것들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맞구나 하는 걸 알게됩니다. 알아야 또 빈 구석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고, 바로 충전할 수 있습니다.
"나도 김치도 만들고, 된장도 만들면 좋겠어. 배워야지! "
한국방문 후. 제 친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십니다. 아버지는 주중에 충청도 모 처에서 지내십니다. 거의 매주 토요일에 다시 서울로 오시고, 월요일에 다시 가시죠. 제 외할아버지가 일궜던 땅이에요. 그 곳에서 은퇴 후, 아버님은 그곳에서 지내십니다. 그런데 이번에 뵈니. 뜬금없이 '김치도 만들고, 된장도 만들 줄 알면 좋겠어! 이제 배워야지!' 하십니다. 세상은 항상 변하고 있고, 필요한 건 빠르게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이번 한국방문으로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유트브' 동양상 보기, 찾기 및 인터넷 검색 등을 알려드릴 수 있었답니다. 두 분 다 매우 좋아하시더군요. 검색은 힘 아니겠어요.
역할이 많다!
역할이 많다는 건. 그 만큼 매우 필요한 사람이다 하는 뜻 아니겠어요. 물론, 다녀오니. 이건 좀 이렇게 처리를 해 주지 하는 아쉬움도 있지요. 인천공항을 향한 벤쿠버발 비행기 속에서 나란히 앉았던 어머님들과 제가 공통적으로 '염려'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백야드 잔디는 어쩌나?' 했었지요. 남은 가족들이 알아서 '잔디'도 잘라주고, 물도 주고, 구멍도 뚫어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하면 좋으련만! 공교롭게도 '야드'일에 다들 큰 관심이 없는 배우자 및 가족을 뒀기에 '코메디'처럼 한국가는 비행기 속에서 '백야드 걱정'과 '잡초'걱정을 하던 팔자좋은(?) 유한 아줌마부대 아니었나요. 물론, 예상한 그대로! 대충 그런 자잘한 아쉬움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할 줄을 이미 예상하기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절대 자잘한 일로, 타박하지 말자!' 했었지요. 그들은 잔디는 그냥 잡초만 못 한 '풀대기' 일 뿐이고, 큰 관심을 둘 정도로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익숙한 자신의 일로 인식하지 않음을 압니다. 물론 '엄마, 내 손은 검은 손이에요!'하며, 호기롭게 구입해 온 '화초' 및 죽이기 절대적으로 어렵다 하는 '선인장'도 매일마다 얼마나 자랐나 하고, 자를 들이대고 키를 재더니만 어느 사이 과한 관심과 애정으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하는 자녀의 '검은손' 타령과 '자신없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맡기고 간 야채 및 화초 중에는 딱 한 화분만 운명을 달리했으니. '미나리' 화분 한 개 정도 운명을 달리한 건. 매우 큰 선방을 한 샘 아니겠어요. 또 며칠 뒤면, '내가 간다! 엄마가 간다! 아내가 간다!' 하는 데, 그 며 칠을 못 참고, 잘 지내왔다 싶은 부녀끼리 '언쟁'을 했다하기에 '뭘 그렇게 대단하게 스트레스를 받아했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역으로 풀이를 해 본다면, 그 만큼 '안방마님'으로 저의 역할은 대단하지 했었답니다. 네, 무한긍정모드. 기승전결. 나로 끝이 나지요. 여하튼, '뒤는 내가 책임지겠다!' 해온 자녀도 기대이상으로 모든 부분에서 선방을 했지요. 일단 무탈하게 시스템적으로 잘 운영해 준 것도 감사하고, 본인도 일터에서 미친듯이 무척 바빴다 하는데, 남편의 조력도 감사합니다.
보너스, 여담이라면!
왜 영어가 잘 안 들리니!
저는 32일 만에 다시 캐나다에 돌아왔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영어가, 영어가, 영어가 평상시보다 더 잘 안 들리는 현상이 있었답니다. 당황했었답니다. 아니, 이런 일이 있나 싶었죠. 벤쿠버 국제공항에서 부터 에드먼튼 공항까지. 또 비행시간이 있었죠. 매우 단순한 표현의 영어 안내 방송을 들었는데, 물론 전날 밤부터 잠을 설치고, 장시간의 비행시간 중에도 한 숨도 못 잤고, 벤쿠버 공항에 내려서 에드먼튼 행 비행기 게이트 앞에 도착해서야 긴장이 확 풀려서 그리고 '카페인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준 듯 싶어서 따뜻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고, 그만 졸음이 물 밀듯 밀려오기는 했었습니다. 피곤도 했고, 방심도 했습니다만, 안내방송에 순간적으로 '뭐라고? 뭐래?' 싶었지요. 그래서 매우 당황했었답니다. 네. 아마도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두 달이라는 여름방학을 보낸 후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때. 제가 느꼈던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도 저희 집 학생이 지난 수 년 전 부터 한국에 여름방학에 돌아간 후에도 '영어의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영어투터링 학습을 받고 싶어요' 하며 요청을 해온 이유였구나 싶었답니다. 이해라는 건. 역지사지를 해 봐야 조금 더 알게되는 게 있습니다. 살짝 고백하지만, 더 솔직하게 한국에 들어가 여러 만남을 갖고, 하나씩 하나씩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면서 분명 나는 한국어를 듣고 있지만, 저 말 뜻. 내포된 의미는 무엇이지 하는 순간순간도 있었답니다. 이렇게 나중에서야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하는 뒤늦은 깨달음도 얻어보지요. 네.언어라는 게 때론 단순하지 않지요. 지난 해. 저희 자녀가 한국방문 후.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엄마, 내가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가 된 것 같아요!"
네. 저도 십분 공감했었답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비교적 해외교포들은 한국어도 매우 직설적으로, 명확하게 사용하죠. 그런데, 한국 본토에서 만난 분들 중에는 한국어를 저희 보다 더 다양하게 혹은 은근하게 혹은 내포적 의미로 더 폭넓게 사용하는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간혹 '이런 의미냐?'하며, 다시 묻게되고, 이에 상대방은 '그걸 꼭 말로 표현해야 아나? 눈치가 없나? 일부러 모르는 척 하나? '하는 듯 했지요. 보다 명확하게 의미를 알고자 함이 때론 '눈치가 없다!'는 식으로 보이기도 하나 보다 했었답니다. 전자가 좋을까? 후자가 좋을까? 네, 저는 한국살이던 캐나다살이던 항상 명확한 대화를 더 선호합니다. 보다 분명하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잘 알리고, 교류하는 걸 즐깁니다. 그래서 북미. 이곳 캐나다에 나와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설화법을 선호하는 자. 직설화법이 보다 더 보편적인 서양살이가 더 맞는지도 모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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