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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깻잎 키우기/질경이

잡초인듯, 약초인듯

잡초인듯, 약초인듯





무지의 소치


질경이는 이곳 현지 인들에게는 잡초로 취급받습니다. 물론 같은 한국계분들도 이 작물이 야드에 나오면 뽑아서 버리죠. 왜? 야드를 망치니까. 잔디를 망친다 판단하기 쉽습니다. 물론 저도 몇 해 전 까지는 그러했었습니다. 아주 몹쓸 잡초구나 했었답니다.  


캐나다 잡초?


어느 해던가요. 야드에 나오는 잡초를 하나씩 '캐나다 잡초'라는 검색어를 넣어서 이름을 알아보고, 이를 다시 한국사전을 통해서 전환해 찾아보면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 질경이도 찾을 수 있었답니다. 이후 야드에 씨앗이 자연스럽게 날아들어와 발아한 질경이를 하나씩 뿌리째 뽑아서 한 곳에 얌전하게 모아두었고, 단지 물만 오다가다 줬을 뿐인데 이렇게 풍성한 수확의 기쁨이 있습니다. 


내 눈이 보배다.


제 가족들은 틈틈 이런 말을 제게서 듣습니다. 생색내기죠.  '봐라, 내 눈이 보배지?' 하고 말이죠. 단지 잘 보고, 관심을 갖고 찾아봤을 뿐인데, 누구에게는 기필코 뽑아내서 버려야 하는 잡초인 질경이를 온 가족을 위해서 귀한 약초로, 사계절 나물로 활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질경이는 대표적인 항암야채다 합니다. 남들은 악착같이 찾아서 먹어준다 하건만, 일부러 찾아먹자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밭 위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주니 단지 채취후.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있는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서 먹어주면 되는 일 아니겠어요. 또 남은 양은 겨울용 나물반찬으로 데쳐서 물기 쪽 짠 후. 냉동보관해 사용하고 말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동굴형 인간인지라. 낯선 환경이나 새로운 도전을 크게 즐기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잘 관찰하고, 살피면서 활용이 되는 것과 활용이 되지 않은 것 정도는 구분하길 즐깁니다. 쓸데없이 남의 눈치를 본다거나 체면을 차린다거나 자로 잰듯. 틀거리에 맞춘 듯. 일렬종대로 줄을 맞춰야 하고, 남들 살아가는 모양새처럼 꼭 같아야만 한다는 강박은 없지만 적어도 기본 틀거리는 지키자 합니다. 이는 곧 예의 혹은 매너겠죠. 물론 그 이상을 타인에게 요구하거나 요구받는 것도 크게 반기진 않습니다. 까탈스럽기는!  


나는 욕심이 없는데?


제 가족은 이구동성. 이 말에 대한 반박을 하길 잘 합니다. '엄마는 모든 것들이 완전하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욕심이 없다고 해? ' 하더군요. '아니, 내가 뭘 바랬다는 거야? 그냥 나는 최선의 노력을 할 뿐이야( 너도 최선의 노력을 하기 바랄 뿐이고) ' 하죠. 물론 옆에 앉아서 궁시렁 거리며 '욕심이 없는게 가장 큰 욕심이지'하며 어깃장을 놓는 가족 중 1인도 있습니다. 욕심이 없다 자칭하는 인물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나요. 그래서 당신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요 한답니다. 세상 참 이상하죠. 작가보다 더 작가스러운분은 정작 작가짓을 하지 않습니다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 하는데 조금만 지나면 작가하셔도 되겠습니다. 뭐 작가가 대단하거나 엄청나게 고상하고 우아한 표찰이 되겠습니까만! 


탐욕과 원은 다르다?


그렇게 되도 좋고, 해도 좋고, 갖어도 좋고 그렇지만 뭐 아니어도 크게 나쁘지 않더라 하면 원 아니겠나요. 그렇다면 전 원은 많은 사람은 맞습니다만, 탐욕이 많은 자는 아닌듯 싶은데, 역시 꿈보다 해몽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