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왜 나는 좋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기 어려운 것 일까요?
현재까지 게시된 제 동영상 강의 중에서 가장 많은 클릭수를 나타내는 질문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좋은 이성은 많은데..."
인간의 기본 욕구 아니겠어요. 남자라면, 여자라면, 모두 다 좋은 이성을 만나서 짝을 짓고, 알콩달콩 하게 재미있게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조금 퍽퍽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만 하면, 매우 훌륭한 배우자를 만났구나 생각을 하고, 또 덕분인지 너무나 감사하게도 선량하고, 매우 영리한 자녀를 잘 뒀다 판단은 합니다. 영리함을 뛰어 넘는 현명한 자녀가 되길 물론 희망하죠. 그런데 대체 어떤 복으로, 덕으로 그리된 것이냐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다만, 오해는 마시라.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같은 가족풍경을 항상 유지하고 살아온 건 아니에요. 의견이 합치되기 전에 매우 살벌하게 의견을 나눕니다. 매우 직설적이죠.
"상대를 통해 얻을 나의 득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제가 저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절대 하지 않은 게 있는데, 계산입니다. 상대를 얻음으로 인해 얻을 득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이래서, 저래서 득이 될 것 같다 하는 쓸 곳 없는 생각은 단 한 차례도 해 본일 없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럭저럭 잘 살아왔구나 합니다. 득을 얻자 하는 생각을 해 본 일 없으니. 뭐 대단하게 잘 안살아진다 하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비교라는 건 해 본 일 없습니다. 남의 집 남자, 남의 집 남편과 내 남편을 도마 위에 놓고, 비교 분석을 해 가면서 '너는 왜 이렇게 부족하냐?'하며 타박을 해 본 역사가 없지요. 자녀도 그렇습니다. 남의 자녀와 내 자녀를 놓고, " 너는 왜 이러니?" 하며, 쓸데없는 비교라는 건 해 본 역사가 없습니다. 저는 매우 똑똑한 여자는 아닌데, 본능적으로 그런 쓸데없는 건. 할 필요가 없다 하는 건 누구보다 먼저 잘 알았죠. 그것 만큼 부질없는 게 있을까요. 이치로 따져보면, 지 손으로 골라잡은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의 집 남자가 더 좋아보이면 내 남자와 살기 어렵죠. 여자도 같습니다. 내 손으로 고르고 골라 잡은 여자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고, 이웃 댁. 혹은 내 친구의 아내처럼 너는 왜 그렇게 못 하냐 하고 타박을 하면서 함께 잘 살아보자 하는 건. 잘 살아지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잘 안살아지는 걸 하고 있다 해야죠. 본인이 제 아내와 남편을 남과 비교할 때. 배우자는 왜 비교하지 않겠습니까? 비교하지 않던 자를 배우자로 맞이해도, 한 배우자가 생각없이 비교 삼매경을 해 가면, 매우 잘 배웁니다. 한 술 더 뜨죠. 그런데 저는 제 아내와 제 남편을 남과 비교하는 건 당연한 일이요.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건. 매우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일이다 하기 급급하다면, 잘 살아지긴 좀 어렵겠구나 하고 판단하면, 백발백중 이랍니다. 사람은 가장 좋은 걸 갖고 싶어하지. 일부러 나쁜 걸 갖자 하지 않습니다. 이에 가장 좋다 혹은 가장 나쁘다 하는 마음과 생각을 내지 않고, 일단 선택을 했으면, 한번 살아보자 했으면, 그냥 살아가자 하는 게 백배천배 더 잘 살아진답니다. 또 길게 살아봐야 정확하게 결산을 내기 쉬운데, 요즘은 너무나 짧게짧게 살아보고, 바로 주판알 튕겨보자 하며, 누가 득을 얻었나. 누가 손해를 봤냐 하기에 급급하니. 대부분 득 보다는 실이 많다 하게 생각되기 나름입니다. 왜? 절대로 손해 볼 수 없다. 나는 이 남자, 이 여자를 통해 득을 얻고 있다 하거나 득을 얻어야만 살 가치가 있다 하는 계산을 이미 하고 앉아있으니. 잘 살아지긴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런 분들은 몇 번을 새로운 파트너로 교체를 해도, 만족은 없습니다. 그래서 수 차례 왔다 갔다 하는 이유이지요.
"선량하고, 성실하면 돼!"
선량하다 하는 건. 천치를 데리고 와라 하는 말이 아니에요. 선량함이란, 이미 그 말 안에 사리분별을 할 줄 안다 하는 걸 의미합니다. 바름이 무엇인지. 그른 게 무엇인지. 분별을 해서 바르게 언행하는 걸. 바로 선량하다 하는 것이죠. 가령, 마냥 내가 얻을 득을 생각하고, 선량함 척 하거나, 흉내내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건 얄팍한 거래죠. 나에게 조금 득이 될 것 같으면, 조금 선량하게 굴고,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대충 상대하고, 그건 이미 사리분별을 잃은 겁니다. 제발, 바른 사리분별을 하고 살아라 하면, 꼭 엉뚱하게 이해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져서 상대해라 하는 말로 제 멋대로 알아듣지요. 아닙니다. 내가 이해득실을 따질 때. 남은 안 따지겠어요? 더 잘 따집니다. 그런데 왜 저만 똑똑하다 하길 즐길까요? 어리석으니까요. 사리분별과 이해득실은 매우 다른 개념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나의 이해득실만 잘 따지자 하면, 결국 주변에 남는 자들은 나를 자신의 이해득실 안에서 따져 보았을 때. 득이다 하는 판단을 하는 사람들만 남습니다. 즉, 편리하게 이용하겠다 하는 더 극악한 자들만 내 곁에 남게된다 이 말이죠. 스스로 마음과 생각을 그렇게 먹고 살다보면, 점점 더 그런 극악하고, 영악한 사람들만 골라서 자신의 인연 속에 스스로 자꾸만 불러들인답니다. 스스로 자초해 화를 부른다 하는 말입니다. 재미 있지요. 그런데 또 자신은 이해득실을 잘 따져야 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된답니다. 잘 따지는 사람은 싫고, 마냥 선량한 사람 하고만 나누며 살고 싶다 하면서 말이죠.
내 수준을 올려야 보이는 것들....
사람은 다 제 수준만큼 보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배우자나, 자식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이냐.' 싶고, '천박할까' 싶으면, 그건 곧 그 혹은 그녀, 그들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의 문제구나 해야 할 겁니다. 그런 사람을 나의 배우자로, 그것도 배우자 좋아라 했나요. 아닙니다. 나 좋으라고, 나 좋을 것 같으니까. 선택을 했으니. 곧 어렵다 하는 게 있다면, 그건 곧 자신의 실책이지. 배우자와 자식들의 실책은 아닙니다. 자식은 부모가 보여준 그대로, 그 보다 더 극명하게 들어나는 강화된 언행을 합니다. 유전도 있겠습니다만, 영 유아기부터 부모의 이기심, 본이 되지 않는 천박함을 목격하며 조기 교육을 직접적으로 받아온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문제가 있다 한다면, 문제가 있는 너만 바꿔라 하지 않고, 나 먼저 바꾸마 해야 조금 더 쉽게 살아집니다. 내 수준을 높여야 가족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 말 뜻이죠. 이런 이치를 먼저 알기 어렵죠. 내 수준이 높아야 결국 내 수준에 맞는 좋은 배우자 감이 내 눈 안에 들어오더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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